봄 여행은 꽃 한 종류를 좇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단순합니다. 올해는 벚꽃, 내년은 튤립, 그 다음 해는 라벤더 — 이런 식으로 한 해에 한 꽃씩 잡아두면 봄 여행 캘린더가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욕심을 내서 한 번에 다 보려고 하면 어디서도 만개를 못 잡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제 첫 벚꽃 여행이 그랬습니다.
2019년 4월 12일에 교토에 갔어요. "벚꽃 시즌이면 어디든 보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항공권을 대충 끊었는데, 도착해 보니 이미 만개가 끝나고 꽃비가 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벚꽃이라는 꽃이 만개 후 3~5일 만에 떨어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다행히 아라시야마 산 위쪽은 평지보다 4일쯤 늦어서 그쪽에서 만개를 봤지만, 그 뒤로 저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평년 만개일에서 ±5일 여유를 두고 일정을 짠다. 둘째, 같은 도시 안에서 평지와 산지의 시차를 활용한다.
평년 데이터부터 정리하면 후쿠오카 3월 30일, 도쿄 4월 1일, 교토 4월 5일, 진해 4월 5일 전후, 서울 4월 10일, 삿포로 5월 5일. 일본 기상청 사쿠라 예보는 3월 초부터 매주 갱신되니 항공권은 1월 중순에 끊되 일정 변경 가능한 옵션으로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1월 중순이 항공료가 가장 싸다는 건 경험칙이에요. 2월 들어가면 한 달 만에 30~50% 오릅니다.
벚꽃이 봄의 전부는 아닙니다. 4월 말이 되면 무대가 네덜란드로 넘어가요. 쾨켄호프(Keukenhof)라는 곳이 이 시즌에만 두 달 잠깐 열리는 정원인데, 입구에서 줄을 서서 바로 안으로 들어가면 1시간 만에 다 봤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진짜로 즐기려면 안쪽 호수 주변에서 도시락을 펴고 점심을 먹어야 해요. 입장권은 2~3개월 전 예매가 안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쾨켄호프 정문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차라리 쾨켄호프 외곽 농장(리세 마을 일대)을 한 시간 걸어서 둘러보세요. 같은 튤립 밭이지만 사진에 사람이 거의 안 들어옵니다.
5월은 프로방스의 시간입니다. 라벤더는 7월이지만, 5월의 프로방스는 양귀비, 들꽃, 올리브 나무가 주인공이고 무엇보다 사람이 적어요. 7월 라벤더철에 가면 사진 한 장 찍기도 벅찰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데, 5월의 같은 마을은 거의 빈 골목입니다. 아비뇽에서 작은 차를 빌려 고르드, 루시옹, 세낭크 수도원, 레 보 드 프로방스를 사흘에 걸쳐 도는 동선이 가장 무난합니다. 국제운전면허증은 출발 전에 챙기시고, 마을마다 일요일 시장이 살아 있으니 일요일을 끼는 일정으로 잡으세요.
조금 덜 알려진 봄 카드도 하나 적어둘게요. 4월 중순의 대만 아리산(阿里山)은 벚꽃이 해발 2,200m에서 만개하는 드문 장소입니다. 일본 벚꽃보다 1~2주 늦게 절정을 맞고, 한국 관광객이 거의 없어요. 타이베이에서 고속철도로 2시간 반 + 산악철도 2시간이라 가는 길이 만만치 않지만, 일출 기차에서 보는 운해와 벚꽃의 조합은 동아시아 봄 여행의 숨은 한 장면입니다.
봄 여행에서 가장 자주 잊어버리는 건 알레르기예요. 일본 3월은 삼나무 꽃가루(스기) 시즌이라, 한국에서 화분증이 없던 분도 일본에서 처음 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인구의 30%가 이 화분증을 앓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 마스크와 안약, 세티리진 계열 항히스타민제를 미리 준비하시고, 현지에서 약이 떨어지면 마츠모토 키요시 같은 드러그스토어에서 "알레지온"이라는 상표로 살 수 있어요. 유럽은 자작나무 꽃가루와 잔디 알레르기가 복병입니다.
일정 짤 때 한국 직장인이 활용할 수 있는 황금 구간은 부처님오신날과 어린이날이 몰리는 4월 말~5월 초입니다. 연차 3~4일을 더하면 6~8박짜리 유럽 여행이 가능하고, 이 시기는 7~8월 성수기 대비 항공료가 30~40% 저렴해요. 저는 이 시기에 유럽행을 가장 많이 갔습니다. 날씨도 좋고 인파도 적은 균형점이라서요.
마지막으로 옷차림 한 마디. 봄의 함정은 일교차입니다. 낮엔 18~22도지만 아침저녁은 5~10도까지 떨어져요. 반팔 + 셔츠 + 얇은 점퍼의 3겹이 정답입니다. 신발은 방수 운동화. 봄비는 언제 올지 모르고, 특히 네덜란드와 영국은 하루에 네 계절이 다 지나가는 날이 많거든요. 접이식 우산은 가방 기본 장비로 챙기세요. 이 정도 준비로 떠나면 봄 여행은 사실상 실패할 일이 잘 없습니다.